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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특별 연설
이리나 보코바 사무총장님, 그리고 내외 귀빈 여러분,
유네스코 창설 70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해에,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이곳
유네스코를 방문하게 되어 매우 뜻 깊게 생각합니다.
초청해 주신 보코바 사무총장님과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오늘 이 곳을 방문하면서 유네스코가 걸어온 지난 70년과 함께, 대한민국 70년
역사의 발자취를 되돌아보았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유네스코가 세워지게 된 계기는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이었습니다. 참혹한 전쟁의 참화를 겪은 국제사회는 더 이상
군사력과 경제력 같은 물리적 힘만으로는 평화를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로
운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시대적 고민의 결과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지
금 우리가 있는 유네스코의 창설이었습니다.
“전쟁은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평화의 방벽을 세워야 할 곳도 인간의 마
음이다.”
유네스코 헌장에 새겨진 이 메시지는 전쟁의 상흔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
겠다는 유네스코 창시자들의 외침이자, 오늘날 분쟁과 갈등의 현장을 살고 있는 세계
인들에게 살아있는 메시지가 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는 이러한 공동의 목표를 실현
하기 위해 교육, 과학, 문화 분야에서 인류 발전에 괄목할만한 기여를 해왔고, 지구촌
곳곳에서 의미 있는 결실을 거두고 있습니다. ‘모두를 위한 교육(Education for All)’
캠페인과 세계교육포럼은 교육기회를 확대하고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토대가 되
고 있습니다. 인간과 생물권 사업을 비롯한 과학 분야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은 인류
가 직면한 도전에 대응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네스
코는 인류공동의 유산 보호와 문화적 창의성을 창달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해 왔습니
다. 창설 초기, 신생국 문자해득(文解, literacy) 제고와 문화유산 복원에 중점을 두었
던 유네스코의 활동 영역은 이제 정보격차, 사회변동, 생명윤리 분야로 확대되고 있
습니다. 유네스코는 인류의 지적 인프라 전반을 강화하는 포괄적인(inclusive) 국제기
구로 성장하여, 우리의 마음에 더욱 단단한 평화의 방벽을 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내외귀빈 여러분, 유네스코가 창설되었던 1945년은 대한민국이 잃
어버린 나라를 되찾은 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광복과 동시에 한반
도 분단의 역사가 시작됐고, 곧 이은 6.25 전쟁은 온 국토를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한
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발전과 번영의 역사를 써왔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유네스코는 소중한 동반자였습니다.
유네스코는 1951년 교과서 공장을 건립하여 교과서 출판을 지원했
고, 교육재건 방안을 작성하여 한국이 교육정책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기여했습니다.6.25 전쟁 직후에는 농촌 지도자 양성시설 건립도
지원했습니다. 이러한 유네스코의 초기 지원은 한국이 국가 발전의
초석을 닦는 데 큰 도움이 되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우리는 성장과 발
전의 길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한국의 발전은 유네스코의 활동이
그에 상응하는 노력과 합쳐질 때, 얼마나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지를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입니다. 또한, 교육, 과학, 문화가 한국 발
전의 축이 됐다는 점에서, 지적 활동 분야에서 국제협력을 촉진시켜
세계평화와 인류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유네스코의 비전이 올바
른 방향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유네스코 헌장에 담긴 “
평화의 방벽”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경
험하며 살아온 나라입니다.
그러나 유네스코의 이상도, 대한민국의 꿈도, 아직은 풀어야 할 숙제
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 지구촌의 분쟁과 갈등은 새로운 형태
로 변화하면서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70년 분
단 상황은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고, 긴장과 충돌이 계속되고 있습니
다. 저는 이제 우리가 70년 전의 출발점에 다시 서서, 여전히 인류의
중대한 과제인 평화의 문제를 고민하면서, 그 해답을 함께 찾아나가
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외귀빈 여러분, 2차 대전 이후 70년이 지난 오늘날, 지구촌의 모습
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습니다. 전 세계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
고, 경제적 상호 의존성이 증대되면서 국가들간 대규모 전쟁의 발발
가능성은 상당히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지난달 이 곳 파리에서 발
생했던 테러가 보여 준 것처럼 불특정 다수의 민간인을 상대로 한 극
단적 폭력행위와 지역 분쟁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습니다. 세계 전역
으로 확산 중인 폭력적 극단주의는 대량난민으로 인한 인도적 위기
를 불러오고 있습니다. 타문화에 대한 불관용은 문화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무너뜨리고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인류의 정신적 자산인 문
화재들을 파괴하고 훼손하는 일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폭력
적 극단주의의 확산을 막고, 反인륜적 범죄행위인 테러리즘에 대응
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단합된 의지를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한
국은 국제사회의 테러 척결 노력에 적극 동참해 나갈 것입니다. 이와
함께, 폭력적 극단주의와 문화
·
종교간 갈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나
가는 해법을 함께 찾아나가야 합니다.
저는 지난 5월, 서울을 방문하신 보코바 사무총장님으로부터 참으로
끔찍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시리아 난민촌에서 만난 한 어린 소녀
에게 장래의 꿈을 물었더니, 테러리스트가 되겠다고 대답했다고 합
니다. 중동 각지의 난민 캠프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총칼과 복수
만 생각한다면, 폭력적 극단주의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
입니다. 분쟁지역 어린이들에게 증오가 아닌 화해를, 폭력이 아닌 대
화를, 좌절이 아닌 희망의 꿈을 심어주는 일야말로, 오래도록 유지될
평화의 방벽을 세우는 일입니다.
저는 그 해답이 바로 ‘교육’에 있다고 생각하며, 세계시민교육을 더
욱 확산하고 강화시켜야 한다고 믿습니다. 지난 5월 한국에서 열린
2015 세계교육포럼 ‘인천선언’을 통해 세계시민교육이 향후 15년간
의 세계교육 목표로 설정되었습니다. 한국은 국내 교육과정과 연계
하여 세계시민교육 과정을 개발하는 등 세계시민교육 확산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또한, 교육을 통해 국가발전을 이
루고 국민의 삶을 바꾼 경험을 다른 국가들과 지속적, 적극적으로 공
유해 나갈 것입니다. 더불어, 폭력적 극단주의를 종식시키기 위해서
는 이를 조장하는 사회
·
경제적 근본 원인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합니
다. 빈곤, 청년일자리 부족, 취약계층의 사회적 소외 같은 문제가 갈
등과 분쟁을 부추기는 도화선이 되고 있는 만큼, 한국은 이러한 인류
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기
여를 확대해 나갈 것입니다.